- Posted at 2009/11/09 09:56 | View : 1,589 |

지난 10월 28일~30일, 2박3일의 일정으로 '2009 공공디자인학교-도시재생을 고민하다'가 진행됐다.
근대유산, 산업유산의 활용 방안에서 시작된 고민은 도시재생이라는 넓은 범위로 확대되었고, 거기에 마을만들기라는 주제까지 끼어들었다.
교육준비 과정에서 마을만들기이든, 공공디자인이든, 도시재생이든, 커뮤니티비즈니스이든.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도시를 좀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이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안점을 어디에 두는가,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뽑아들게 되는 단어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이웃과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번 교육은 군산에서 시작해서 광주, 부산에 이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 일정 안에서 발견한 감동의 순간을 풀어보려고 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언덕. 이곳은 부산 감천동. 일명 '태극도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태극도 신도들이 한 곳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이 언덕은 '숨 쉴 틈도 없이' 빼곡하게 집이 들어차 있다. 집들은 일렬로 늘어서 지어졌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든 막힌 곳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의 놀라움은 서로에 대한 배려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뒷집의 일조권을 보존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집이든 그들은 같은 풍경을 공유하며 자신만 더 보겠다고 우기지 않는다.
물론 이 곳에도 특별히 조망이 좋은 지점이 있기는 하다.

바로 이 풍경이 보이는 지점의 집이다. 멀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 곳이 태극도 마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점이기도 하단다.
이 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 꿈을 꾸는 부산의 마츄픽츄>의 사업대상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 구석구석 예술작품들이 숨어있다.
그 작품들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소통했던 예술가들의 노력이 중요하고, 그 소통 안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음이 중요하고, 자신들의 보물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영섭 아트팩토리인다대포 대표에 의하면 원래는 다른 집들처럼 회색빛 계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품 설치 이후 주인 할아버지께서 더 예쁘게 하시기 위해 계단을 빨간 책으로 칠하셨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안이 아니라 밖을 예쁘게 가꾸기 시작하는 것. 이 작은 이야기가 내게는 꽤 인상깊었다.
여기까지는 인상 깊었던 것이고.
감동을 받은 것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 자체였다.
그냥 작품만 보러 와서는 모르고 지나갔을 작은 이야기가 세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 동네 골목 한쪽의 계단이다. 계단 모서리를 유심히 보시길. 무엇이 다른지 확인할 수 있는가?
직각으로 끝나는 모서리를 깍아놓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저 줄은 빨래줄이다. 손으로 잡고 있는 나무막대가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빨래를 널 때에는 사진 속처럼 나무 막대를 세워 벽과 줄 사이에 틈을 만들어 준다. 빨래가 없을 때에는 줄이 벽에 붙어있도록 막대를 빼면 된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


작은 가게가 있다. 한쪽에는 아이스크림 등등의 먹을거리도 팔고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옷수선도 하는 작은 가게. 이 가게 주인장은 동장님이시다. 그리고. 자세히보면 열쇠들이 있다. 이 열쇠들은 부모가 집을 비우면서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맡겨둔 것들이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여기에 와서 열쇠를 찾고 과자를 사먹곤 한다.
이 작은 열쇠 뭉치들을 보면서. 이 마을이 아주 잘.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집들이 붙어있어서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누구네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는지 한나절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을 때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뢰가 동네 사람들 사이에 있구나 싶었다.
저 작은 열쇠들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마을을 상징한다는 생각도 했다.
산동네(실제로 이 곳의 경사는 꽤 가파르다) 그리고 못사는 동네.
어쩌면. 그래서 보존될 수 있었던 동네.
이 마을의 모습은. 아마 어느 정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실제 주민들을 위해 보수되어야 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바라는 것은. 모습이 바뀌더라도 지금의 그 신뢰는 바뀌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다.

계단 자체가 길이 되고 길이 마당이 되는. 내 집의 옥상이 다른 집의 마당이 되는. 작고 좁은 마을.
부산 감천동.
덧.
마을을 둘러보고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몇몇의 아이들이 동네 어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보고 인사했다. 밝게. "안녕하세요"라고.
요즘. 내가 길을 가면서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본 적이 있던가?
정말. 이 마을이 잘 살아있구나. 마지막까지 감동.
사진_ 희망제작소 임상태 인턴연구원
글_ 희망아카데미 류도리 연구원 (ryu@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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