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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쩍이/걷다보면 - 국내

[펌] 부신 감천동 태극마을

by DOUGH 2010. 4. 6.
감천동 태극도 마을의 속살을 보다

지난 10월 28일~30일, 2박3일의 일정으로 '2009 공공디자인학교-도시재생을 고민하다'가 진행됐다.

근대유산, 산업유산의 활용 방안에서 시작된 고민은 도시재생이라는 넓은 범위로 확대되었고, 거기에 마을만들기라는 주제까지 끼어들었다.

교육준비 과정에서 마을만들기이든, 공공디자인이든, 도시재생이든, 커뮤니티비즈니스이든.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도시를 좀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이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안점을 어디에 두는가,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뽑아들게 되는 단어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이웃과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번 교육은 군산에서 시작해서 광주, 부산에 이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 일정 안에서 발견한 감동의 순간을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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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언덕. 이곳은 부산 감천동. 일명 '태극도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태극도 신도들이 한 곳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이 언덕은 '숨 쉴 틈도 없이' 빼곡하게 집이 들어차 있다.  집들은 일렬로 늘어서 지어졌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든 막힌 곳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의 놀라움은 서로에 대한 배려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뒷집의 일조권을 보존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집이든 그들은 같은 풍경을 공유하며 자신만 더 보겠다고 우기지 않는다.

물론 이 곳에도 특별히 조망이 좋은 지점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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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풍경이 보이는 지점의 집이다. 멀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 곳이 태극도 마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점이기도 하단다.

이 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 꿈을 꾸는 부산의 마츄픽츄>의 사업대상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 구석구석 예술작품들이 숨어있다.

그 작품들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소통했던 예술가들의 노력이 중요하고, 그 소통 안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음이 중요하고, 자신들의 보물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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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박은생 작가의 <내 마음을 풍선에 담아>라는 작품으로 동네 아이들의 소망이 풍선에 적혀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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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입구 즈음에 자리한 신무경 작가의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에는  민들레 홀씨로 표현된 동네 어르신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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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전영진 작가의 <사람 그리고 새>일 것이다. 실제 집 위에 설치된 구조물로 사람 얼굴은 하고 있는 새를 설치한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신 할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설치를 원하셨다고 한다. 옥색빛 건물위에 강렬한 색으로 자리한 새도 눈길을 끌지만 빨간 계단이 선명하다.

진영섭 아트팩토리인다대포 대표에 의하면 원래는 다른 집들처럼 회색빛 계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품 설치 이후 주인 할아버지께서 더 예쁘게 하시기 위해 계단을 빨간 책으로 칠하셨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안이 아니라 밖을 예쁘게 가꾸기 시작하는 것. 이 작은 이야기가 내게는 꽤 인상깊었다.

여기까지는 인상 깊었던 것이고.
감동을 받은 것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 자체였다.

그냥 작품만 보러 와서는 모르고 지나갔을 작은 이야기가 세 가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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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첫 번째. 동네 골목 한쪽의 계단이다. 계단 모서리를 유심히 보시길. 무엇이 다른지 확인할 수 있는가?
직각으로 끝나는 모서리를 깍아놓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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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얘기했듯이 '숨 쉴 틈도 없이' 들어선 이 동네는 당연히 길도 좁다. 그 좁은 길을 함께 사용하기 위한 작은 지혜가 사진 안에 있다.

저 줄은 빨래줄이다.  손으로 잡고 있는 나무막대가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빨래를 널 때에는 사진 속처럼 나무 막대를 세워 벽과 줄 사이에 틈을 만들어 준다. 빨래가 없을 때에는 줄이 벽에 붙어있도록 막대를 빼면 된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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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가 있다. 한쪽에는 아이스크림 등등의 먹을거리도 팔고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옷수선도 하는 작은 가게. 이 가게 주인장은 동장님이시다. 그리고. 자세히보면 열쇠들이 있다. 이 열쇠들은 부모가 집을 비우면서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맡겨둔 것들이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여기에 와서 열쇠를 찾고 과자를 사먹곤 한다.

이 작은 열쇠 뭉치들을 보면서. 이 마을이 아주 잘.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집들이 붙어있어서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누구네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는지 한나절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을 때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뢰가 동네 사람들 사이에 있구나 싶었다.

저 작은 열쇠들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마을을 상징한다는 생각도 했다.

산동네(실제로 이 곳의 경사는 꽤 가파르다) 그리고 못사는 동네.
어쩌면. 그래서 보존될 수 있었던 동네.

이 마을의 모습은. 아마 어느 정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실제 주민들을 위해 보수되어야 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바라는 것은. 모습이 바뀌더라도 지금의 그 신뢰는 바뀌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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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자체가 길이 되고 길이 마당이 되는. 내 집의 옥상이 다른 집의 마당이 되는. 작고 좁은 마을.
부산 감천동.


덧.
마을을 둘러보고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몇몇의 아이들이 동네 어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보고 인사했다. 밝게. "안녕하세요"라고.
요즘. 내가 길을 가면서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본 적이 있던가?
정말. 이 마을이 잘 살아있구나. 마지막까지 감동. 

사진_ 희망제작소 임상태 인턴연구원
글_ 희망아카데미 류도리 연구원 (ryu@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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