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이리 떼’ 한 가운데 와 있다
강론
정만영 신부(예수회)
창세 46,1-7.28-30/마태 10,16-23
한 마디로 하면 ‘고통의 길’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에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이해가 안 된다. ‘그분을 따르면서 이런 대가를 치를 정도로 의미나 가치가 있을까?’하는 존재론적 질문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나아가 ‘아니! 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마치는 것이 참 목자라고 가르친 사람이, 자신의 양떼를 이리들로부터 지킬 생각은 안 하고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다니! 이 양반이 참 목자 맞아?’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분심 아닌 분심으로 기도 안에서 계속 솟아오른다.
이런 분심 속에서 머물다보니 “이리 떼”란 단어가 불편함을 주었다. 해서 이 단어에 더 머물렀다. “이리”라는 동물의 특성을 생각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이리”의 특성이 무엇인줄 아는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프로그램에 나타난 “이리”는 양떼에 접근하면 그냥 다 문다.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고기는 양 반 마리에 불과하지만 그 물어 버린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이리”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만 생존하기 위해서만 양을 죽이지 않는다. 그냥 물어버린다. ‘이리’가 다녀간 흔적은 ‘물려 상처 입은 양’,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양’, ‘죽은 양’, ‘놀라 충격 받은 양’, ‘도망치는 양’, ‘도망치다 벼랑에 굴러 떨어져 죽은 양’, ‘도망치다 다친 양’, 만이 남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예수가 “이리 떼”로 당신의 제자를 보낸다는 그 말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리”에게 “물리도록”, “상처 입도록”, “피 철철 흐르도록”, 나아가 “물려 죽도록”, “죽음” 그 가운데로 예수께서 보낸다는 것이다. 잔인하게도 “죽음 안으로 파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몽골이 송연하여 아마도 십중팔구는 따라가다가도 슬금슬금 도망칠 것 같다. ‘당신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는 사람을 구슬릴 생각은커녕, 쫓아버릴 의도로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니 ‘과연 누가 이런 예수를 따라갈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기도 안에서 “한 참 즐겁게 꼬리를 흔들고 주인을 따라가던 개가 호랑이를 만났을 때 고개를 감추고 줄행랑을 치는 그런 모습이 먼저 그려지는 것”은 저 만의 상상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기도를 하다 예수님이 오늘 지금여기, 대한민국 대한문 앞 쌍용차 분양소에 오셔서 오늘 복음의 같은 말씀을 하신다는 묵상을 해 보았다.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16)하셨다면 이 말씀을 듣는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다 저는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에서 또 다시 양들을 보내는 “이리 떼”란 오늘날 무엇이며 누구를 지칭하는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여러분에게도 묻겠다. 여러분에게 “이리 떼”란 무엇이고 누구인가? 여러분은 이곳에 어떻게 왔는가? 여러분이 원해서 오셨는가? 여러분의 두발로 걸어서 왔는가? 누가 떠밀어 이곳에 온 것은 아닌가? 여러분들이 지금여기 어디에 누구 앞에, 어떤 “이리 떼” 앞에 있는지 도움을 주기 위해 언급하겠다.
첫 번째로 먼저 우리가 처해있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겠다. 들으시며 묵상하시거나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지시 하에 국가 공무원이 조직적이며 집단적으로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선거에 개입한 명백한 사실을 왜곡,축소 하였다. -6월 25일 자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머리기사는 “노대통령...NLL 김위원장님과 인식 같아”라고 동일했다. -지난 주말 열린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에 약 1만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소위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가 벌어졌다. 그러나 소위 공영방송인 KBS, MBC,SBS, YTN뿐만 아니라 4대 일간지에는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현 정부에는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남재준 국정원장, 육군 대장출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육군 대장 예편한 김관진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 출신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등 군 출신들이 실제적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강정에서 해상환경 오염 공사를 감시하며 고발한 예수회 박도현수사와 송강호박사의 의견은 무시하고, 전화로 삼성이 신고하였다고 2명을 불법체포하고 구속하였다. 밀양에서 765만KW의 고압송전선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둘째로 정치학자들이 규정한 정치체제를 열거하겠다. 이런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공산국가인지 판가름 해 보시라.
- 어떠한 체계적 논리와 이성을 갖춘 사상이라곤 볼 수 없고 애국심과 애족사상, 국익 등의 담론을 전제로 하기에 개인주의나 합리적 토론 등을 무시하며 맹목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들에 의해 떠받들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 반공주의적인 가치가 심화되면서 극-반공주의, 극우적 사상으로 변질된다. -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신체가 우월하고, 징병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남성우월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나 공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과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 또한 사회와 제도의 통제 속에서 사상이나 신념의 정직한 표출이 제한되었고 젊은이들은 그 젊음을 발산할 통로가 없는 현실 속에서 참는 법만을 강요 한다. -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집단에 직접적인 테러나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에 의해 수행 된다. 이러한 목표달성 과정에서 지배체제에 반대하는 민중의 모든 자극적 집단조직화를 위협과 폭력에 의해 방해하고, 사상·양심·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등 국민의 자유권을 박탈하며, 또 이러한 인권을 보장하는 여러 가지 민주주의적 사상이나 제도까지 철저히 파괴한다. - 특히, 독점재벌과 독재정권의 강고한 결합을 기초로 국민 대다수를 강압적으로 통치하려는 기도한다. - 국민 대다수를 우민화하는 통제 수단으로 언론, TV등 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집단과 재벌집단이 결합한다. - 한 문장으로 하면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해를 위해 정치인과 관료, 군, 대기업등이 공존 공생하는 구조로 이루어진 정치체제”라고 하겠다.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새누리당, 국정원, 박근혜대선팀, 검찰, 경찰, 대기업, 조중동, KBS, MBC, SBS, YTN의 언론”이 일사불란하게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처럼 7개의 거대 이익집단이, “7개의 악의 축”을 이루는 지배체제하에 있다.
이런 정치제도를 무엇이라 일컬을 수 있는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공산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국가라 할 수 있는가? 파시스트, 퍄쇼정권이다. 이런 파시스트들이 형성한 정부는 정치적으로 볼 때 이단아이다. 정상적인 정치체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파시스트정권은 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국가들이었다. 즉 이탈리아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나찌 히틀러, 일본의 이토오 히로부미 총독을 앞세운 제국주의의 히로히토와 도조 히데키 총리였다. 더불어 이러한 정치체제는 불행히도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이다. 따라서 무솔리니, 히틀러, 일본제국주의, 박정희는 태어나면 안 되었던 정치체제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예수가 말한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26,24)라는 유다와 같았던 인물이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들은 ‘귀태(鬼胎), 태어나서는 안 될, 불길한’ 인물이다. 따라서 박근혜는 ‘귀태(鬼胎)’의 후손‘이 맞다. 자신이 부정하면 할수록 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태생인 것이다.
오늘 지금여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리 떼”는 ‘귀태(鬼胎)’, 바로 파시스트들이다.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우리가 대면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런 “이리 떼”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시려 하는 곳, 파견하려는 대상이자 곳이다.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대상,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17-19)고 하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다.
동의하시는가? 두려운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원했던지 원하지 않았는지 모르나 저와 여러분은 사실 이미 “이리 떼” 한 가운데 와 있다. 다시 묻는다, 여러분들이 선택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들이 걸어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죽음이 우리를 이곳으로 내 몰았다.
제1독서를 보면 야곱과 11명의 아들이 왜 살던 팔레스틴을 떠나게 되었는지 아는가? 기근과 굶주림이었다. 죽음의 위협이 자신들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을 떠나게 했다. 즉 죽음이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밀어냈다, 축출당한 것이다. 그 죽음이 어디로 향하게 했는가? 이방인, 우상을 섬기는 나라, 하느님을 모르던 에집트라는 나라였다. 엘도라도 황금의 나라도 아니다. 유토피아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아니다. 그 나라엔 누가 있는가? 11형제들에게는 아우 요셉이 있는 나라이다. 자신들이 죽이고자 했고, 사실 죽음으로 내 몰았던 형제가 있는 나라였다. 또한 요셉의 아비인 야곱에게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니 사실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죽은 아들이라고 믿었던 그 아들이 있는 나라이다. 그러니까, 죽음을 피하고 생존하고자 했던, 아니 죽음이 내몰았던 그들이 도착해야 하는 곳은 또 다른 죽음이 있는 곳이었다.
다시 저와 여러분은 여기에 왜, 어떻게 왔는가?란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가? 어떻게 와 있는가? 쌍용차 분양소는 어떤 의미인가? 24분의 죽음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온 이유는 바로 그렇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인가? 아니다 24분의 죽음이 우리를 이곳에 불렀다. 우리를 이곳에 오도록 했다. 이들이 70여 일간의 옥쇄파업 투쟁을 할 때 우리는 몰랐다. 산자가 우리에게 “살려달라” 하소연 할 때 우린 귀 먹었다. 그들이 죽은 후, 한 참 후에 이들이 우리를 불러 모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죽음이 죽은 자들이 우리가 죽었다고 할 때 우리가 이곳에 왔다. 산자는 힘이 없다. 죽은 자의 힘이다. 죽은 자에게는 산자를 부끄럽게 하고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왔다.
야곱과 11명의 형제들이 죽음으로 내 몰았던 그 죽음을 대면하기 위해, 만난 요셉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죽음이었는가? 역설적이게도 생명이다. 목숨을 건졌다. 마찬가지로 대한문에 온 우리들, 죽음이 불러 온 이곳...우리가 접하고 대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리 떼” 뿐인가? 두려움인가? 도망침인가?,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다. “예수님을 만나, 알아가는 곳”이다. “생명을 느끼고 만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조심해야할 이유도, 무슨 말을 해야 할 걱정도 없다. “이리 떼”가운데 있으나 죽음 가운데 부활하신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창세기 46,3) 아멘
악천후에도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야기
박호민
미사 100일 전에는 끝나지 않을까 했는데 넘어 갈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 있습니다. 이런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셔서 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대한문 분향소가 한 달 전에 틀렸습니다. 그 억울한 마음, 그 마음에 담고 있는 분노를 어떻게 표출할까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께서 우리 해고노동자들 힘내라고 매일매일 미사를 드려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요즘은 6시반이 되면 미사가 기다려지고 우리 신부님들도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여기 오시는 신자 한 분 한 분 기억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저희들 결코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미사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공장으로도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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