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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통치의 최고 책임자인 임금이 집무·생활하던 곳과 이에 부속된 건물의 총칭.
1392년 건국된 조선은 이성계가 1394년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경복궁을 지음으로써 서울시대를 열게 된다. 조선의 궁궐은 일부 훼손되긴 했지만 많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궁궐은 그 기능에 따라 정궁(正宮)·별궁(別宮)·행궁(行宮) 3개로 나뉜다.
현재 남아 있는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 , 일종의 별궁이었으나 실제로는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 , 그 옆에 있던 창경궁 , 임진왜란 때 임시 궁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광해군 때 정식 궁궐이 된 덕수궁 , 광해군 때 지어진 별궁으로 서궁으로 불리운 경희궁 , 이상의 5개를 조선의 5대궁이라 부른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궁궐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의 궁궐은 지세에 따라 약간씩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전체구성은 비슷한 배치방식을 보인다.
궁궐의 둘레에는 담장을 두르고, 담장의 주위에는 문을 두어 출입했고, 내부는 전체를 3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3문3조(三門三朝)라는 중국의 배치방식을 따랐다. 외문(外門)-외조(外朝)-중문(中門)-치조(治朝)-노문(路門)-연조(燕朝)로 이어지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배치방식인데 이들 공간의 성격을 살펴보면, 먼저 외조는 궁궐 안에 있던 관청이 자리하는 공간이고, 치조는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고 집무를 하던 공간으로 궁궐의 중심인 정전이 있는 곳이다. 정전은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 권위를 강조했다.
연조는 임금의 침식과 휴식을 위한 개인생활공간이다. 이 영역에는 임금과 왕비, 왕대비의 침전이 자리하고, 그 옆에 궁궐 안에서 필요한 제반시설과 관계자들의 생활시설이 있다. 왕세자의 거처는 주로 동쪽에 자리하여 동궁이라 부른다. 특히 연조의 뒤는 휴식과 교육을 위해 후원을 두는데 후원의 조경방법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배치수법에 의한 것이다. 궁궐 내의 각 건물들의 주위에는 담장을 둘렀으며 배치는 직선을 주로 하였으나 지세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가하기도 했다. 후원은 전체배치와는 달리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따랐다. 궁궐은 그 시대의 건축을 대표하는 것으로 그 시대의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진 총체라 할 수 있다.
朴彦坤 글
<휴궁일 안내>
매주 월요일 | 매주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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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
경복궁 종묘 |
답사
대상 | 관람형태 | 관람요금(대인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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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 자유관람 | 3,000원 | |
창덕궁 | 자유관람 | 3,000원 | 8,000원 |
후원 제한관람 (해설자 인솔, 100명 제한) | 5,000원 | ||
창경궁 | 자유관람 | 1,000원 | |
덕수궁 | 자유관람 중명전(예약제, 25명 제한) 무료 |
1,000원 | |
종묘 | 시간관람제 (해설자 인솔, 200명 제한) 자유관람(토요일) |
1,000원 | |
4대궁과 종묘 | 5대궁 통합관람 | 1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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