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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지막 대한문 매일미사_1118] 은총과 사랑이 넘쳐난 225일

by DOUGH 2013. 11. 21.

 

 

 

 

 

마지막 대한문 매일미사 봉헌

 

체감온도 -3.6°C, 급기야 하늘에서는 하얀 눈송이가 흩날렸다. 코가 빨갛게 변한 수녀들과 하얀 사제복 위 겨울옷을 껴입은 신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18일 오후 630,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의 모습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최로 열린 이날 미사에는 70여 명의 신부를 포함해 평소보다 많은 600여 명이 참석했다. 간이의자 외에 바닥에 깐 돗자리도 가득차 결국 많은 이들이 서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48일부터 225일간 이어져 온 대한문 앞 매일 미사가 이날을 마지막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쌍용차범국민대책위는 지난 16, 2009년 사측으로부터 해고당한 후 사망한 쌍용차노동자·가족 24명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면서 대한문 앞 분향소를 17개월만에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앞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이제는 해고자 문제에 대해 사측이 답할 차례라는 이유에서다.(오마이뉴스 기사 일부 발췌)

 

 

 

 

 

은총과 사랑이 넘쳐난 225

 

                                                     강론

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어제가 보름이었습니다. 장동훈 신부님께서 마지막 공지사항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건너편 건물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문득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달이 전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추수를 마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형은 동생을 생각하고, 동생은 형을 생각하여 볏단을 들고 서로에게 전하다가 길 한 가운데서 마주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잠 못 이루던 아이는 달에게 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살아갈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기를 기원하며 잠에 빠져듭니다.

 

 

오늘 미사로 지난 4월부터 지속되었던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을 위한 매일 미사가 일단락됩니다. 아마도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은 달이 전한 이야기의 형제의 마음으로 대한문의 분향소를 평택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날은 추워지고 발걸음은 총총거려지는데 계속 되는 미사로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너무 부담을 많이 준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의 싸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이제 그들 갈 길 가도록 놓아주자고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웠던 그분들이, 그래서 함께 살자고 외쳤던 분들이 밤을 지새가며 고민하였던 결정입니다. 그만큼 건강해졌다고 저희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볏단을 나르던 또 다른 형제의 마음이 저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이 밤 어찌 보낼까? 비가 오면 그 차디찬 바닥이 얼마나 서러울까? 걱정하며 함께 잠 못 이루고 지냈던 지난 8개월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탱해주기에는 너무나 무능했던 사제들이, 그리고 선의의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기웃거리며 길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문의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서 은총과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고,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하느님 나라를 경험한 것입니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느님이 어디 있냐고, 있다면 이 억울한 처지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냐고 따지던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크고 큰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은 눈 먼 이를 눈뜨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눈먼 이의 도시입니다.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살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웃의 고통도, 억울한 이의 참담한 처지도 보지 못합니다. 아니 애써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 내버려진 참담함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는 나는 아프지 않다고, 나는 괜찮다고 위안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도 같은 처지에 떨어지고 말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눈을 감습니다.

 

이처럼 보지 못하던 우리의 눈을 이제 하느님께서는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형제의 아픔은 결국 나 자신의 아픔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먼 이의 안락을 누리던 우리들이 이제 눈을 뜨고 고통을 함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뜰 수 있었던 이 눈이 언제 또 감길지 모르겠습니다. 눈먼 이의 안락함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눈 감지 않기를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치유의 은총을 거부하지 않기를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우리를 초대해 준 쌍용자동차 형제들이 우리를 볼 수 있도록 해준 하느님의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선한 영혼의 수녀님들, 수사님들이 어렵게 뜬 눈을 지탱하도록 부축해 준 하느님의 천사들이었습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매일 미사를 참석해 준 교우들이 눈 똑바로 뜨라고 밝은 빛을 비춰준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비록 신앙을 달리하거나 믿는 바가 없더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함께 해준 시민들이 우리를 받쳐준 선한 지팡이였습니다.

 

그 모든 분들을 통하여 은총에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 하느님께서 선한 지향을 가지고 움직이는 모든 일에 앞으로도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해 주신 동료 사제들 고맙습니다.

 

 

 

 

 

 

 

출처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글쓴이 : 정의구현사제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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