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계단의 옛 모습과 오늘날의 40계단 사진 | |
부산의 계단은 어디서부터 올라야 할까. 아마 동광동 40계단일 것이다.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 11번 출구로 나와서 국민은행 앞에 불꽃모양의 아치인 평화의 문을 들어선다. 저 먼발치에 40계단이 보인다. 바로 옆의 소라계단까지 얼안이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명명되어 있다.이 길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요즘 마로니에 일곱 잎이 점점 싱그러워진다.
하필이면 왜 40계단일까.' 40계단은 1909년부터 1912년 사이 당시 부산에 거주한 일본인 거류민단이 쌍산(영선산 및 영국영사관 산)을 평평하게 깎아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거류지에서 초량방면으로 가려면 쌍산 위의 영선고개를 넘어야 했다'
(부산시보에서 인용)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40계단이니 40이라는 숫자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그 계단을 기념하고 있으니 예사로운 계단은 아닌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계단을 기념하는 '40계단 문화관'을 오르면 그 당시의 생활상과 부산의 표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40계단 기념비 앞에서 올려다 보면 중간 쯤에 '아코디언 켜는 사람'이 한창 연주에 취해있고, 뒤돌아 보면 뻥튀기 아저씨,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휴식, 물동이 진 아이 등과 같은 조형물과 옛 기차길, 바닷길, 우체통, 나무전주, 영화포스터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40계단 옆의 소라계단을 오르면 40계단 문화관이 있다. | |
이곳에 오면 6.25전쟁을 겪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어렵고 막막했던 그때 40계단 주변에 판자집을 짓고 살았던 피난민(5,817,012명 1951년 3월 5일 집계)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에 잊을 수 없는 사람, 고마운 사람, 보고싶은 사람에게 사연을 띄우고 싶어진다.
그 당시 40계단 앞은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장소, 바로 앞 부두에서 흘러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거래하는 장터로 이용되었다 한다. 40계단 기념비에는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윤 작곡, 박재홍 노래)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그 노랫가락의 정서는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그 시절을 아프게 한다. 이것이 노래가 지닌 힘이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경상도 아가씨 1절)
40계단이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로 시작되는 경상도 아가씨 노랫말에 실리고부터이다. 그런데 노랫말과 내력이 기념비 뒷면에 새겨져 있어 아쉽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아코디언 켜는 사람 | |
어떠한 계단이든 계단은 오르는 방향이 정면이다. 그 당시에 힘겹고 고단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살기위해 올라야 했던 40계단이 아닌가. 지금은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된 40계단, 그 기념비 앞면에다 노랫말과 내력을 새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1953년도 흑백사진 한 장을 본다. 당시 중앙동에 있었던 부산역사 화재로 폐허로 변한 40계단에서 아이를 업고 물동이를 이고 내려오는 아낙네와 봇짐을 인 아낙네의 표정이 이심전심 다가온다. 사진에 나오는 물동이 이고 아이업은 그 아낙은 40계단 문화관 앞에 '40계단 여인상'으로 조형되어 있다.
부산역 화재 이후 40계단은 남쪽으로 10여미터 떨어진 오늘날의 40계단으로 새로 축조되었다. 그러면 40계단의 원조는 지금 현재 계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의 40계단은 중앙간판 건물 사이에 폭 1m 정도 남아있는 계단으로 추정된다. 그 곳에는 본래의 40계단임을 알려주는 표석도 안내판도 보이지 않는다. 오르는 사람도 거의 없고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쓸쓸한 계단이다.
뻥튀기 아저씨 | |
이제는 어려웠고 고단했던 그 시절을 잊고 싶어 할 것이다. 사서삼경만이 온고지신이 아니다. 빛나지 않았던 과거의 흔적도 오늘날 되새겨야 할 문화적 가치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이면 40계단으로 내려와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인근 연안부두에서 뱃고동이 울리는 저녁답이면 이 계단길을 따라 영주동, 보수동, 동광동 골목으로, 또 다른 계단으로 올라간다. 계단은 삶의 과정이다.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없는 삶의 원칙같은 것이다.
동광동 40계단은 힘들었던 그 시절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다. 피난민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섞여있다. 이 계단을 오르내렸던 사람들의 후예는 지금 어느 곳에서 뿌리내림며 살고 있을까. 이 계단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초상을 본다.
어머니의 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