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923 전국시국기도회]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
강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통일위원장 하춘수 신부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주신 존경하는 신부님들, 안녕하십니까?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늘 고통받는 이들을 어머니 같이 사랑해 주시는 수녀님들, 인사드립니다. 신앙진리의 수호자요, 순교자들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자랑스런 교우님들, 반갑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민주시민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회복을 기원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줄곧, 정부기관들과 정치인들에 의한 심각한 민주주의 훼손 행위에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대원칙, ‘자유, 평등, 인권’의 가치가 난데없이 땅에 떨어져, 마구마구 짓밟히고 으개어 지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골방에만 있을 수 없어, 현 시국을 걱정하는 많은 신부님, 수녀님, 교우님들과 민주시민들과 함께 이 미사를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문제가, 의혹에서 사실로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은 몸서리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조사, 그리고 언론사 취재 등을 통해서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은, 실로 엄청난 민주주의 파괴행위였습니다. 대북심리전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진 인터넷 선거여론조작은, 선거 중립을 엄정히 지켜야 할 국가기관의 종사자로서의 기본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정부·여당에는 찬동의 글쓰기, 야당에 대하여는 무개념적 비난의 글쓰기, 이런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직원의 혐의가 발각되자 국정원은, 경찰조직에 전방위적인 접촉을 통해 대선 3일전 여직원에 의한 인터넷 댓글 작성 등의 증거가 없다는 허위 중간발표를 하도록 종용하였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일들이 국정원이라는 단일 기관만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사당국인 경찰조직과 제3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방송사들과 보수신문들에 의하여 은폐, 축소, 왜곡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정원 문제에 대하여 비호세력으로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건데, 이들은 분명 한 통속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국회는 국정조사를 실시하여 청문회를 열었지만, 증인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놓고 증인선서를 거부하며 국회를 능멸하고, 여기에 허위 증언하였음이 드러났으며 이에 국민여론은 더욱 들끓고 있습니다.
국정원 문제는 대선개입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이 인터넷 상에서 여론조작을 하고 있었음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에 여당인 새누리당은 NLL대화록 문제를 들고 나왔고, 공방이 가열되자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국가기밀문서인 NLL대화록을 만천하에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를 덮기 위한 또다른 민주주의 파괴행위가 서슴치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이또한 국민여론에 의해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되자, 급기야 진보정당에 대하여 내란음모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전격적으로 공개수사에 나서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전 국정원장을 수사하여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기로 한 검찰 조직을 무마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안사건들을 기획해내는 이들의 작태는 온 국민에게 공포감마저 안겨주고 있고, 국민들은 집단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제 국정원은 국정원이 아니라, 온 국민이 걱정하는 ‘걱정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국정원 선거개입, 정치개입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음지에서 조용히 움직여야 할 정보기관이 이제는 대놓고 보란 듯이 정치적 이슈들을 공작해 내고 있으니, 국민들은 언제 또 국정원이 어떤 기괴한 일을 모의해 낼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국정원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가의 설립이념과 국가 체제를 옹호하고 지켜내야 할 국가기관이 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오히려 국민을 우롱하고 협박하는 오늘날의 작태는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의 십자가, 그 의미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2000년 전 세상 권력의 불의와 위선에 대한 저항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였습니다. 불의한 로마의 권력자들과 위선적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 그리고 대사제들에 대하여 저항하다 마침내 십자가가 돌아가신 예수의 희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는 불의와 불신앙으로 점철된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야훼 하느님의 메시아로서 그분의 뜻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의 활동은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사악한 세력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예수의 십자가를 닮았습니다. 민주주의도, 민의를 외면하는 권력자들과 탐욕적 자본들에 저항하여 ‘자유’와 ‘평등’, ‘인권’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어리석은 군중들의 숱한 모함과, 군인들의 폭력, 극심한 고통 속에서의 의연한 희생이었듯, 민주주의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희생을 마다않고 자유와 평등을 외침으로써 지켜져 왔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추고하는 우리 신앙인들과 민주주의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민주시민들의 염원은 이런 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심각한 민주주의 가치의 붕괴를 목격하는 우리 모두에게, 정의롭고 평화적 방식의 저항은 참으로 정당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듯이, 권력에 대한 위정자들의 집착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대두될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혼연한 외침과 저항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습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탄압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는 부활과 세상구원이라는 값진 보상을 선사하였고 그래서 십자가는 이제 멸망의 표징이 아닌 승리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향한 민주시민의 저항도 때로는 참으로 고되고 참담한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 안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315와 419, 부마항쟁, 광주518, 6월항쟁 등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의연한 봉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민적 저항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횃불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민주시민의 진심어린 외침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저항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제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제는 십자가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이요, 동시에 우리시대의 예언자임을 떠올려 봅니다. ‘미사를 통해 매번 예수의 십자가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는, 그 또한 또 하나의 그리스도요, 그러므로 미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이룩해야 할 예언자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수천분의 한국의 사제들이 이러한 예언자적 소명의식으로 이미 각 교구와 수도회 이름으로 국정원 문제 시국선언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제들의 뜻을 대표하여 전국의 많은 신부님들께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사제들이 예언자라면 사제들의 선언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위정자들은 사제들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뜻과 백성들의 염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미련한 족속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탐욕을 좇아 갈 것이 아니라, 지혜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여! 작금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서 국민들께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여, 이 촛불의 바다를 보십시오. 어두운 이 나라를 밝히겠다는 시민들과 신앙인들의 염원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분들의 외침에 귀기울이십시오. 국민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권은 또 하나의 독재일 뿐입니다. 스스로 독재의 세력임을 자인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오늘 민주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십시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신 오늘의 복음말씀처럼 아무리 감추려고 하고 흩어 버리려고 해도, 진실은 정의의 등불 앞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이미 진실은 드러났습니다.
지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지속적인 정치 개입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대원칙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국정원이 또 어떤 정치공작을 해낼 것인지 노심초사 바라보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국민들의 분노를 보십시오. 그리고 공안통치, 공작정치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진실을 바라는 우리 신앙인들과 정의를 열망하는 민주시민들은 시대의 등불이 되어 오늘의 이 난국을 깨우쳐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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